내 폴더/일상
강을 건너지 못한 자.
ArtWorker
2006. 12. 10. 17:11
관음증은 성적인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데서 오는 사디즘적 쾌락이고.
노출증은 그런 관음증에 대응하여, 자신을 욕망에 대상에 위치 시킴으로서,
욕망의 응시를 즐기는 마조히즘적 쾌락이다.
현대 미디어 문화, 특히 인터넷, 텔리비젼, 광고 등은 모두 이런 쾌락에 의존하여 이루어 진다.
인간의 본성을 아는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내가 돈 많이 버는 방법을 알려줄까?
그럼 심리학을 배워라. 일단 사람을 알아야 사람에게서 돈을 벌수 있다.
그럼 심리학자들은 전부다 부자겠구만!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른다. 왜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그들은 심리학자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심리학과 경제학을 배우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심리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배웠고, 경제학으로 돈의 가치를 활용하여 최적의 선택을 하는 법을 배웠으니, 돈을 벌기가 쉽겠구만?
그러나 또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른다. 왜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 모모라는 책에서 읽은 글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는 수없이 많은 강을 건너야 한다.
나는 그 강을 건널수 있게 자신의 배로 우리를 쉽게 건너게 해줄 뿐이다.
이 강을 건넌다 해도 다른 강을 수도 없이 건너야 한다.
지금 이 강을 건너지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행복은 상대적인 거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작은 삶에 만족을 한다면, 난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반대되는 안주 하다라는 뜻은 만족이란 단어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안주 하는건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냥 이대로 있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
위험함이란 단어가 안주라는 단어속에 깊게 파묻혀 숨겨져 있다.
또한 자신이 만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추측할 뿐이다.
요즘 너무 무계획 적으로 살고 있다.
명백한 꿈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생각 해보면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도 모잘라고도 한참 모잘랄 판에
왜 그땐 멀게만 느껴졌는지, 난 그 순간 안주 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지 못하는자.
당신이 지금 현실에 만족 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안주 하고 있는거다.
조심해라. 인간의 본성은 자신이 안주 하고 있지 않다고 매일매일 부정하면서 합리화 시킨다.
그 뒤에는 후회라는 녀석이 항상 부축이고 있다.
젠장. 모든 악에 근원은 후회라는 놈이 었구만!!!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라!
낡은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 어떤 전사가 보호와 아낌을 받기 원하는가!
나는 너희들을 보호하지 않으며 아끼지도 않는다.
나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전쟁을 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이여!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출증은 그런 관음증에 대응하여, 자신을 욕망에 대상에 위치 시킴으로서,
욕망의 응시를 즐기는 마조히즘적 쾌락이다.
현대 미디어 문화, 특히 인터넷, 텔리비젼, 광고 등은 모두 이런 쾌락에 의존하여 이루어 진다.
인간의 본성을 아는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내가 돈 많이 버는 방법을 알려줄까?
그럼 심리학을 배워라. 일단 사람을 알아야 사람에게서 돈을 벌수 있다.
그럼 심리학자들은 전부다 부자겠구만!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른다. 왜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그들은 심리학자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심리학과 경제학을 배우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심리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배웠고, 경제학으로 돈의 가치를 활용하여 최적의 선택을 하는 법을 배웠으니, 돈을 벌기가 쉽겠구만?
그러나 또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른다. 왜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 모모라는 책에서 읽은 글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는 수없이 많은 강을 건너야 한다.
나는 그 강을 건널수 있게 자신의 배로 우리를 쉽게 건너게 해줄 뿐이다.
이 강을 건넌다 해도 다른 강을 수도 없이 건너야 한다.
지금 이 강을 건너지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
행복은 상대적인 거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작은 삶에 만족을 한다면, 난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반대되는 안주 하다라는 뜻은 만족이란 단어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안주 하는건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냥 이대로 있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
위험함이란 단어가 안주라는 단어속에 깊게 파묻혀 숨겨져 있다.
또한 자신이 만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추측할 뿐이다.
요즘 너무 무계획 적으로 살고 있다.
명백한 꿈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생각 해보면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도 모잘라고도 한참 모잘랄 판에
왜 그땐 멀게만 느껴졌는지, 난 그 순간 안주 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지 못하는자.
당신이 지금 현실에 만족 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안주 하고 있는거다.
조심해라. 인간의 본성은 자신이 안주 하고 있지 않다고 매일매일 부정하면서 합리화 시킨다.
그 뒤에는 후회라는 녀석이 항상 부축이고 있다.
젠장. 모든 악에 근원은 후회라는 놈이 었구만!!!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라!
낡은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 어떤 전사가 보호와 아낌을 받기 원하는가!
나는 너희들을 보호하지 않으며 아끼지도 않는다.
나는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전쟁을 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이여!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